내 구주 예수님
왜 종교 단체를 저주하시는가? 본문
하나님은 왜 자신의 사역을 받아들이고 순복하는 교회만 축복하시는가?
왜 종교 단체를 저주하시는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교계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전의 옛 사역만 지키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사람들을 버리고 그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그의 사역을 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새 사역에 협력하는 사람들이다. 오직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의 경영을 성취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실행>에서 발췌
『무릇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은 다 성령의 함께함과 징계가 있고, 성령의 흐름 속에 있지 않은 사람은 모두 오히려 사탄의 지배 아래에 있으므로 성령의 역사가 전혀 없다.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 즉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인 사람은 하나님의 새 사역에 협력하는 사람들이다. ……성령의 새로운 역사를 받아들인 사람인 이상, 성령의 흐름 속에서 살면서 성령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게 된다. 진리를 실행하려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깨우침이 있고, 진리를 실행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징계가 있고 심지어 징벌도 임한다. 어떠한 사람이든지 성령의 흐름 속에 있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그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인 각 사람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이다. ……그러나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라면 다르다. 그 사람들은 모두 성령의 흐름 밖에 있는 사람들이다……성령의 흐름 속에 있지 않은 그 사람들이 하는 것은 성령의 새 사역과 관련이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어떻게 해도 성령의 징계가 없고 더욱이 성령의 깨우침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성령께 버림받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모두 악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그들이 육체에 따라 하나님의 이름을 내걸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역사할 때에 고의로 하나님을 적대하면서 역행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과 협력하지 못하는 것만 해도 이미 크나큰 패역인데, 하물며 고의로 역행하는 이 사람들이야 더구나 보응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의 악행을 언급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저주하지 못해 한스러워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사람이 보기에는 마치 그들의 모든 행위가 다 하나님의 이름에 관련되는 것 같겠지만, 사실 하나님이 보기에는 하나님의 이름과는 조금도 관련되지 않고, 하나님의 증거와도 관련되지 않는다. 그들이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과는 무관하고, 하나님의 이름과도 관련이 없으며, 또 하나님의 현재 역사와도 관련이 없다. 그들은 모두 자신을 모욕하고 사탄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들은 그 분노의 날을 위해 악행을 쌓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경영을 가로막지 못하는 사람과 하나님의 새 사역과 무관한 사람이라면, 그들이 어떻게 하든 지금은 그 어떤 상응한 보응도 받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분노의 날이 아직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보기에 많은 일들은 하나님이 벌써 상관했어야 하고, 악을 행하는 그들은 진작에 보응을 받았어야 하지만, 경영 사역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 분노의 날도 아직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의한 자들이 여전히 불의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교계에 있는 그들은 성령의 함께하심과 성령 역사가 없는 데다가 하나님의 이름까지 모욕하는데, 하나님은 왜 그들을 멸하시지 않고 오늘까지도 제멋대로 날뛰는 것을 용인하십니까?”라고 말한다. 사탄을 드러내고 육체를 유로(역주: 흘러나옴)하는 사람들은 모두 무지한 소인배들이고, 황당무계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도대체 어떻게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는지를 그들이 알기 전에는 아무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들을 철저히 정복하고 나면 악을 행한 사람들은 모두 보응을 받게 될 것인데, 누구도 그 분노의 날을 벗어날 수 없다. 지금은 사람을 징벌하는 때가 아니라 정복 사역을 하는 기간이다. 단지 경영을 파괴하는 일을 저지른 일부 사람에 대해서만 일을 저지른 경중에 따라 적합한 징벌을 내린다. 인류를 경영하는 기간에 무릇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과 관계가 있지만, 성령께 버림받은 사람들은 모두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되는데, 그들의 실행은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하나님과 관계가 있는 사람은 오직 새 사역을 받아들인, 하나님과 협력하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단지 받아들인 사람만 상대하는 것이지 받아들였는지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모두 대상이 있는 것이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탄과 서로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아예 하나님을 증거할 자격이 없고, 더욱이 하나님과 협력할 자격도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실행>에서 발췌
『하나님을 따름에 있어 가장 주요한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현실 말씀에 근거하는 것이다. 생명 진입을 추구하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기를 추구하든 모두 하나님의 현실 말씀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 만일 네가 교통한 것과 네가 진입하기를 추구한 것이 하나님의 현실 말씀을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라면, 너는 하나님의 말씀 밖에 있는 사람이므로 너에게는 절대로 성령의 역사가 없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은 그의 발걸음을 따르는 사람이다. 네가 이전에 터득한 것이 아무리 좋고 아무리 순수해도 하나님은 그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 네가 만일 그런 것을 버리지 않는다면 이후의 진입에 커다란 가로막음이 될 것이다. 무릇 성령의 오늘의 빛을 따르는 사람은 모두 복이 있는 사람이다. ……성령의 현재 역사를 따르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며 하나님이 인솔하는 데까지 따라간다면,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 성령의 그때그때 역사를 따르지 못한 그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의 역사 가운데 진입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사역한 것이 아무리 많고, 받은 고난이 아무리 크고, 뛰어다닌 길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인정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들을 칭찬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무릇 하나님의 현실 말씀을 따르는 사람은 모두 성령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현실 말씀 밖에 있는 사람은 모두 성령 흐름 밖에 있는 사람인데,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칭찬을 받지 못한다. 성령의 현실 말씀 밖의 섬김은 모두 육체에 속하고 관념에 속하는 섬김이니 그런 것으로는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없다. 사람이 종교 관념 속에서 살고 있으면 하나님 뜻에 부합되는 일을 할 수 없다. 설사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더라도 상상 속에서 섬기는 것이고 관념 속에서 섬기는 것이어서 전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없다. 성령 역사를 따르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그의 뜻에 맞는 섬김이지, 관념과 육체적인 섬김은 원하지 않는다. 사람이 성령 역사의 발걸음을 따를 수 없으면, 그것은 관념 속에서 사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의 섬김은 엇나가는 것이고 방해하는 것이며, 이러한 섬김은 하나님과 상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으며,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지 못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고 틀림없이 하나님과 합할 수 없는 사람이다. 성령 역사를 따르는 것이란 사람이 하나님의 현시 뜻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현시 요구에 따라 할 수 있고, 오늘의 하나님께 순복하고 따르면서 하나님의 최신 말씀에 따라 진입할 수 있는 것을 가리킨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성령 역사를 따르는 사람이고 또한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최신 역사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할 수 있으며, 최신 역사에서 사람의 관념과 사람의 패역을 인식할 수 있고 사람의 본성과 실질을 인식할 수 있으며, 또한 섬기는 중에서 차츰차츰 성정의 변화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며, 진실로 참 도를 찾은 사람이다. 성령 역사에 도태된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따르지 못한 사람이고, 모두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배반한 사람이다. 이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이 새로운 사역을 하였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형상이 그들 관념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논단하여 하나님께 버림받게 되었다.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인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할 수 있고 진심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찾을 수 있으면 하나님을 볼 기회가 있을 수 있고 성령의 최신 인도를 받을 기회가 있을 수 있다. 고의로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하는 그 사람들은 모두 성령의 깨우침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말하니, 사람이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얻을 수 있는지의 여부는 하나님의 은총에 달렸고 사람의 추구와 사람의 속마음에도 달렸다.
무릇 성령의 현실 말씀에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복이 있는 사람이다. 이전에 사람이 어떠했는가에 개의치 않고 이전에 사람 몸에 성령이 어떻게 역사했는가에 개의치 않고 최신 역사를 얻은 사람은 다 가장 복된 사람이다. 오늘 최신 역사를 따르지 못하는 사람은 다 도태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르라>에서 발췌
『하나님의 발자취를 바짝 따를 수 없는 그 사람들에게는 모두 이러한 생활이 있을 수 없으며, 그들은 모두 흑암 속에 떨어져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따르지 않은 사람들이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모든 역사에 순복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이상, 단계마다 하나님의 발자취를 바짝 따라야 하고,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라야 진정으로 참 도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고, 성령 역사를 인식한 사람이다. 글귀 도리를 고집스레 지키는 사람은 모두 성령의 역사에 도태될 사람이다. 하나님은 시기마다 새로운 사역을 전개하므로 각 시기에 사람들 가운데 새로운 시작이 있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단지 “여호와는 하나님이다” 혹은 “예수는 그리스도이다”라는 한 시대에만 적합한 이런 진리만 지킨다면, 사람은 영원히 성령의 역사를 따를 수 없고, 영원히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없다.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든지 사람이 아무런 의혹도 없이 따라가고 또한 바짝 따른다면, 사람이 또 어찌 성령께 도태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지 사람이 오로지 성령의 역사임을 확신하고 아무런 우려 없이 성령의 역사에 협력하여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한다면, 사람이 또 어찌 징벌받을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모두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만 믿고 예수를 믿지 않은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여기지만,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또 ‘여호와만 믿으면서 예수를 저버리는’ 이 역할을 맡고 있고, ‘메시아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예수라 칭하는 메시아를 대적하는’ 그 배역을 맡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모두 한 단계 성령 역사를 받아들인 후에도 여전히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고, 여전히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상할 것도 없다. 이것은 모두 사람의 패역으로 초래된 것이 아닌가? 오늘날의 새 사역에 뒤떨어진 세계 각지의 기독교인들은 모두 요행을 바라는 마음을 품고 하나님이 그들 각자의 소원을 이루어 줄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셋째 하늘로 끌어 올린다는 이유를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절대적인 확신이 없고, 예수가 도대체 어떻게 흰 구름을 타고 와 그들을 데려가는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절대적인 확신이 없으며, 더욱이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그들이 상상하는 그날에 정말로 오는지 확정할 수 있는 절대적인 확신도 없다. 그들은 각자가 모두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도대체 하나님이 다양한 종족의 하나하나의 ‘작은 무리’들을 끌어 올릴지, 이런 것은 그들 자신마저도 분명히 알지 못한다. 그들은 지금 하나님이 어떤 사역을 하고 있는지, 지금은 도대체 어떤 시대인지, 하나님의 뜻은 어떠한지도 명확히 말하지 못하면서 다만 손가락을 꼽으며 나날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라 끝까지 가는 사람이라야 마지막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길 끝까지 따라가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이미 전부를 얻었다고 여기는 그 ‘똑똑한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나타남을 볼 수 없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계속 발전하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를 아무런 까닭 없이 중단시킬 뿐만 아니라, 100% 확신이 있는 듯 하나님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충성하면서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그 사람들’을 끌어 올릴 것이라고 여긴다. 비록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절대적으로 충성’할지라도 그들의 언행은 여전히 사람을 너무나 역겹게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성령 역사를 대적하는 사람들이고, 모두 간계를 부리고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길 끝까지 따라가지 못하고 성령 역사를 따르지 못하는, 옛 사역만 지키는 사람은 하나님께 충성하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되고, 새 시대에 버림받는 사람이 되고 징벌받는 사람이 된다. 이 사람들은 가장 가련한 사람들이 아닌가? 많은 사람들은 또 무릇 낡은 율법을 버리고 새로운 역사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모두 양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양심’만 논하고 성령 역사를 인식하지 못하는 이 사람들은 최종에 자신의 양심 때문에 자신의 앞날을 망칠 것이다. 하나님도 역사함에 있어 규례를 지키지 않고, 그 자신이 한 역사일지라도 미련을 두지 않으며, 부인할 것은 부인하고 도태시켜야 할 것은 도태시키는데, 사람이 오히려 경영 사역 중의 작은 부분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적대시한다면 이것은 사람의 황당무계함이 아닌가? 사람의 무지함이 아닌가? 복을 받지 못할까 봐 지나치게 소심한 사람일수록 오히려 많은 축복을 받을 수 없고, 최종의 복도 받을 수 없다. 율법을 완고하게 지키는 그 사람들은 모두 율법에 절대적으로 충성하는데, 그들이 그렇게 율법에 충성할수록 하나님을 더욱 대적하게 되는 패역자들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하나님나라시대이지 율법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의 사역을 과거의 사역과 함께 논해서는 안 되고, 과거의 사역을 오늘의 사역과 서로 비교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의 사역이 바뀌고 사람의 실행도 바뀌어 지금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를 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율법과 십자가에 대한 사람의 충심은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실행>에서 발췌
『사람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후 흰 구름을 타고 하늘에 계시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우편으로 돌아갔으니, 마찬가지로 흰 구름을 타고(흰 구름은 예수가 하늘로 돌아갈 때 타고 간 흰 구름을 가리킨다) 유대인의 형상을 지니고 유대인의 옷차림으로 그를 몇천 년 동안 간절히 기다리던 인류 가운데 강림할 것이라고 여긴다. 또 그들에게 나타난 후 양식을 베풀어 주고 생수를 부어 주며, 은혜와 자비가 충만하게 사람들 가운데서 생활하며 매우 생생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여기는 등등 이런 관념이 있는데, 사람들은 다 이렇게 여기고 있다. 그러나 구주 예수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가 한 것은 사람의 관념과 완전히 상반되었다. 예수는 자신이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강림하지 않았고, 또한 ‘흰 구름’을 타고 만인에게 나타나지도 않았다. 예수는 이미 강림하였지만 사람들은 전혀 알아보지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으며, 무작정 그를 기다리고만 있을 뿐, 그가 이미 흰 구름을 타고 (흰 구름은 그의 영, 그의 말씀, 그의 모든 성품과 소시(所是)를 가리킨다) 말세에 온전케 하려는 한 무리의 이기는 자들 가운데 강림하였다는 것은 모른다! 거룩한 구주 예수는 비록 자비가 가득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그가 어찌 더러움이 가득하고 더러운 귀신들이 모여 사는 그런 ‘성전’ 안에서 역사할 수 있겠는지 사람이 이를 어찌 알겠는가? 사람들은 비록 예수의 강림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가 어찌 또 불의한 자의 살을 먹고 불의한 자의 피를 마시고 불의한 자의 옷을 입으며, 그를 믿으면서도 그를 알지 못하는, 계속 그에게 토색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나타날 수 있겠는가? 사람은 단지 구주 예수가 자비와 긍휼이 가득하고 또한 구속이 충만한 속죄제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공의와 위엄, 진노와 심판을 만재(滿載)한, 권병(역주: 권세)을 지니고 존엄이 가득한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은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모두 구속주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바라고 간절히 사모하며 심지어 사람의 기도가 ‘하늘’을 감동시켰을지라도, 구주 예수는 그를 믿으면서도 그를 알지 못하는 그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구주’는 이미‘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에서 발췌
『왜 종교계 사람들을 하나님 믿는 사람이 아니라, 악을 행하는 자들이고 마귀와 같은 부류라고 하는가? 그들이 악을 행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지혜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행한 일을 지금까지 그들에게 나타낸 적이 없다. 그들은 모두 눈먼 사람들로, 하나님의 행사를 보지 못했고,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은 사람이므로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가 전혀 없으며, 성령의 역사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하나님의 역사가 없는 사람은 모두 악을 행하는 자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그들은 하나님의 성품, 그리고 진정한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마음을 점유하게 하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만을 만족시키려고 하고 자신의 상상과 야심만을 만족시키려고 한다. 그러므로 그 부분의 사람들도 비록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면서 가정과 직업도 버리긴 했지만 악행은 끊임없다. 심지어 어떤 자들은 제물을 훔쳐 먹고, 어떤 자들은 제물을 낭비하고, 어떤 자들은 암암리에 하나님을 저주하기까지 한다. 또 어떤 자들은 직위를 이용해 계속 자신을 증거하고 높이면서 하나님에게서 사람을 쟁탈하고, 하나님과 지위의 높낮이를 다투며, 여러 가지 방식과 여러 가지 수단으로 사람에게 자신들을 숭상하게 하고, 늘 사람들의 마음을 구슬려 사람을 속박하려고 한다. 심지어 또 어떤 자들은 일부러 사람들에게 자신을 하나님으로 오해하게 하여 하나님으로 대하게 한다. 그런 자는 사람들에게 자신도 패괴된 사람이고, 자신에게도 패괴가 있고 교만이 있으니 자신을 숭상하지 말고, 자신이 행한 것이 얼마나 잘한 것이든 그것은 다 하나님께서 높여 주신 것이고, 다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라는 말은 전혀 하지 않는다. 왜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자신의 지위가 사라지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전혀 하나님을 높이지도 않고 증거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증거하지 않는 원인은 전혀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1>에서 발췌
『진리인 줄 뻔히 알면서도 고의로 대적하는데, 패역한 자식들이다! 마치 그것의 염라대왕이 현재 ‘왕’이라고 새겨진 보좌에 오른 듯하여 그것이 곧 유유자적하며 안하무인격이다. 진리를 찾고 구하며 정의를 따르는 자가 몇이나 되는가? 모두 개돼지 같은 짐승들이 더러운 파리 떼들을 데리고 거름더미 속에서 의기양양해하고, 못된 짓을 하여 말썽을 일으키며, 자기의 ‘염라대왕’이 가장 큰 ‘왕’이라고 스스로 여기는데, 어찌 자기가 더러운 파리임을 생각이나 했으랴? 하지만 자기는 오히려 개돼지 같은 아비어미를 믿고 하나님의 존재를 모욕한다. 보잘것없는 파리가 자기의 아비어미는 이빨고래만큼 크다고 여기는데, 어찌 자기는 너무 작고 아비어미는 오히려 자기보다 몇억 배나 더 큰 더러운 개돼지임을 생각이나 했으랴? 자신의 비천함을 모르고 오히려 개돼지 몸의 ‘썩은 냄새’를 힘입어 도처에서 횡포한 짓을 행하며 후대를 번식하려고 망상하는데, 수치를 모른다! 푸른 날개를 달고는(하나님을 믿는다는 명의를 내건 것을 가리킴)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기면서 가는 곳마다 자기의 아름다움과 멋짐을 뽐내고, 자기 몸의 더러움마저도 슬그머니 사람의 몸에 뿌리고, 또한 자기의 다채로운 빛깔을 띤 한 쌍의 날개로 자기 몸의 더러움을 덮어 감춘 듯이 득의양양해하며, 따라서 참 하나님의 존재를 핍박한다(종교계의 내막을 가리킴). 파리의 날개가 설사 아름답고 매혹적일지라도 그것이 어쨌든 배 속에 더러움이 가득하고 몸에 독균이 가득한 작디작은 파리임을 사람들이 어찌 알랴? 개돼지 같은 아비어미를 믿고 세상에서 횡포한 짓을 행하며(하나님을 핍박하는 종교계의 관원들이 국가의 대대적인 지지를 믿고 참 하나님을 배반하고 진리를 배반하는 것을 가리킴) 극도로 미쳐 날뛰는데, 마치 유대 바리새인의 유혼이 또 하나님을 따라 큰 붉은 용 국가로 이사 오고 그것들의 소굴로 이사 와서 또 한차례 핍박 사역을 시작하여 그것들의 몇천 년의 사역을 계속하는 듯하다. 이 무리 인간쓰레기들은 결국 땅에서 멸망되고야 말 것이다! 마치 몇천 년 후의 더러운 귀신들이 더욱더 ‘교활하고 간사하여’ 언제나 암암리에 하나님의 사역을 파괴하려고 계략을 많이 꾸며 몇천 년 전의 비극을 다시 그것의 고국에 ‘상영’하려는 듯한데, 하나님을 핍박하여 하마터면 큰소리로 외칠 뻔하게 하고, 셋째 하늘로 되돌아가 그것을 멸절시키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게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역사와 진입 (7)>에서 발췌
『하나님에게 교파로 인식되고 또한 명의로는 참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그들은 어떤 길을 가고 있느냐?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하나님의 도(道)를 준수하지 않는 길을 가고,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저버리는 길을 간다고 할 수 있지 않느냐? 다시 말해,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의 도(道)를 준행하지 않고 하나님을 저버리는 길을 가고, 하나님을 믿지만 사탄을 경배하고, 마귀를 경배하고, 사람의 경영을 하고, 독립 왕국을 세우는 길을 가고 있다. 이것은 실질이 아니냐? (맞습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경영 계획과 관계가 있느냐? (없습니다.) 너희는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든 믿는 방식이 일단 하나님에게 교파나 단체로 정해진다면, 하나님 편에서 그 사람들은 이미 구원받지 못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왜 이렇다고 할까? 하나님의 역사가 없고, 하나님의 인도가 없고, 하나님을 전혀 경배하지 않는 집단이고 무리라면, 그들은 누구를 경배하는 것이냐? 누구를 따르는 것이냐? 그들이 겉으로는 사람을 따르는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누구를 따르는 것이냐? (사탄입니다.) 그들은 의식상에서, 명의상에서는 아마 사람을 따랐을 것이고, 또한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시인하지만 사실상 사람에게 좌우되고 사람의 지배를 받으며 사람의 통제하에 있는 것이다. 또한 그들이 따르는 것은 사탄이고 마귀이며, 하나님의 적대 세력이고 하나님의 원수이다. 이런 사람들의 무리를 하나님이 구원할까? (하지 않습니다.) 왜 구원하지 않을까? 그런 사람들은 회개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간판을 내걸고 사람의 사업을 하고 사람의 경영을 하며,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경영 계획과 엇나가기 때문에 그들의 결말은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구원할 리가 없고, 그런 사람들 또한 회개할 리가 없다. 그들은 이미 사탄에게 사로잡힌 것이고, 완전히 사탄에게 넘겨진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만 구원받는 길에 들어설 수 있다>에서 발췌
『세상은 무너지고 있다! 바벨론은 마비되고 있다! 교계야! 어찌 나의 땅에서의 권병으로 인해 멸망하지 않겠느냐? 누가 감히 나를 거역하고 대적하겠느냐? 서기관들이더냐? 모든 종교관원들이더냐? 그러면 땅에서 ‘권세 잡은’ 자들이란 말이냐? 천사란 말이냐? 누가 나의 완전무결로 인해 경축하지 않겠느냐? 만민 가운데서 누가 나로 인해 끊임없이 찬양하며 기뻐하지 않겠느냐? ……땅의 나라가 어찌 멸절되지 않겠느냐? 땅의 나라가 어찌 무너지지 않겠느냐? 내 백성이 어찌 환호하지 않겠느냐? 어찌 즐겁게 노래하지 않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22편 말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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