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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의 비밀 1 본문

책/그리스도의 말씀

성육신의 비밀 1

마리Mari 2019. 3. 15. 20:54

성육신의 비밀 1


  

  『 은혜시대에 요한은 예수를 위해 길을 닦는 사역을 했다. 그는 사람의 본분을 이행했을 뿐, 하나님 자신의 사역은 할 수 없었다. 요한이 주의 선봉장이기는 했지만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에 불과할 뿐 하나님을 대표하지는 못한다. 예수가 세례를 받자 ‘성령이 비둘기처럼 그에게 내려왔고’, 그때부터 그는 사역을 시작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직분을 이행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에게 하나님의 신분이 생기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에게서 왔기 때문이다. 그전에 그가 어떻게 믿었든, 연약할 때도 있고 강할 때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모두 직분을 이행하기 이전 정상 인성의 생활이었다. 예수가 세례를 받은(기름 부음을 받은) 직후 바로 능력이 따랐고, 하나님의 영광이 그와 함께하였으며, 그는 직분을 이행하기 시작했다. 그가 표적과 기사를 보이고, 이적을 행하며, 능력과 권능을 가졌던 것은 그가 직접 하나님을 대표해 사역하고, 영을 대신해 사역하고, 영의 음성을 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의심할 여지 없는 하나님 자신이었다. 요한은 성령께 쓰임 받은 사람으로, 하나님을 대표하지 못하며, 대표할 수도 없다. 요한이 하나님을 대표하려고 했다면 성령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 요한에게 사람의 뜻이 많을 수도 있고 치우친 점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는 직접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다. 요한의 잘못과 그릇됨은 그 본인을 대변한다. 그러나 그가 사역한 부분은 성령을 대변한다. 그렇다고 그의 전부가 하나님을 대변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설마 그의 치우침과 그릇됨까지도 하나님을 대변한다는 말이냐? 사람을 대변할 때는 치우침과 그릇됨이 있어도 정상이지만, 하나님을 대변하는데도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성령은 함부로 사람을 하나님의 자리에 세우지 않는다. 사람들이 높이 받드는 사람이라도 안 된다. 하나님이 아니라면 결국 그 자리에 온전히 설 수 없다. 사람이 함부로 하나님을 대표하려 한다면 성령은 용납하지 않는다! 요한의 경우도 성령이 증거한 사람이고 예수의 길을 닦는 자라고 성령이 밝힌 사람이었다. 하지만 성령이 요한에게 행한 사역은 상당히 적절했다. 예수의 길을 닦는 사람으로서 예수를 위해 길만 닦게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성령은 요한의 길 닦는 사역만 수호했으며, 길을 닦는 것 외에 다른 일은 허락하지 않았다. 요한은 엘리야를 대표하며 길을 닦는 선지자를 대표한다. 그래서 그런 사역은 성령이 수호했다. 요한의 길 닦는 사역을 위한 것이라면 성령은 모두 수호하였다. 하지만 요한이 하나님을 자처하며 자기가 구속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면 성령은 그를 징계했을 것이다. 요한이 한 사역이 아무리 크고 성령의 수호를 받았을지라도 그의 사역은 범위가 제한적이었다. 성령이 요한의 사역을 수호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때 그에게 부여한 능력은 길을 닦는 것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역은 그가 전혀 할 수 없었다. 그는 예수가 아니라 그저 길을 닦는 요한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증거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사람이 하는 사역을 성령이 허락하는지가 그보다 더 중요하다. 요한이 당시에는 아주 크게 증거되었고 그가 한 사역도 매우 크지 않았느냐? 하지만 요한이 한 사역은 예수를 넘어설 수 없었다. 요한은 그저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일 뿐 직접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한 사역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길을 닦는 그의 사역이 끝난 뒤에는 아무도 그의 증거를 지키지 않았고, 더 이상 그에게서 새로운 사역을 찾아볼 수 없었으며, 그도 그렇게 하나님의 사역에 따라 떠났다.


  『 악령이 들려 “내가 하나님이다!”라고 계속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드러나고 말았다. 그들이 나타낼 대상을 잘못 골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탄을 나타내기 때문에 성령은 그들을 거들떠보지 않은 것이다. 아무리 대단하게 말하고 그럴듯하게 외쳐 대도 사탄에 속한 피조물에 불과하다. 나는 “내가 하나님이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라고 외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하나님의 사역을 하고 있다. 그런데 굳이 외칠 필요가 있겠느냐? 높이 치켜세울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의 일을 하기 때문에 사람에게서 지위나 어떤 존칭을 받을 필요가 없다. 그가 하는 사역이 바로 그의 신분과 지위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예수는 세례를 받기 전에도 하나님 자신이 아니었느냐? 성육신 하나님이 아니었느냐? 설마 그가 증거된 후에야 하나님의 독생자가 되었단 말이냐? 그가 사역을 하기 전부터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있지 않았느냐? 네가 새 길을 열지 못하면 영을 대표할 수 없다. 네가 영의 사역과 영의 말씀을 선포할 수도 없고 또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없고 영이 하는 일도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지혜와 기묘함, 난측함, 사람을 형벌하는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나타낼 수도 없다면, 네가 아무리 하나님을 자처해도 허울만 있을 뿐 소용없다. 하나님이 왔을 때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을지라도 그는 계속 사역을 행하며, 또한 영을 대표해 사역한다. 네가 그를 사람이라고 불러도 좋고, 하나님이라고 불러도 좋고, 주님이든 그리스도든 자매든 어떻게 불러도 괜찮다. 하지만 그가 하는 사역은 영의 사역을 대변하고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대변한다. 그는 사람이 자신을 뭐라고 부르든 개의치 않는다. 사람이 그에게 붙인 호칭으로 그의 사역을 결정할 수 있겠느냐? 네가 그를 뭐라고 부르든 하나님이 보기에 그는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이고 영을 대표하는 존재이며 영이 인정하는 존재이다. 네가 새 시대의 길을 개척하지 못하고 옛 시대를 끝낼 수도, 새 시대를 열 수도 없고 새 사역도 할 수 없다면, 하나님이라고 칭할 수 없다!


성육신의 비밀 1성육신의 비밀 1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이라 해도 하나님을 대표할 수는 없다. 비단 그 사람이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가 하는 사역도 하나님을 직접 대표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사람의 체험을 직접 하나님의 경영에 포함시킬 수는 없다. ‘사람의 체험’이 ‘하나님의 경영’을 뜻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사역은 모두 그의 경영에 따라 하고자 하는 사역이며 커다란 경영에 관계된 일이다. 반면 사람(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이 하는 사역은 모두 개인의 체험을 공급하고 앞사람이 개척한 길을 이어 다른 체험의 길을 찾아내는 것이며, 성령의 인도를 받아 다른 형제자매들을 인도하는 것이다. 그들이 공급하는 것은 개인의 체험이나 영적 인물의 영적 저술이다. 성령께 쓰임 받기는 하지만 그들의 사역은 6천년 경륜에서 큰 경영과 관계된 사역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단계별로 성령이 세운 사람으로, 자신의 역할과 수명이 다할 때까지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들을 이끌 뿐이다. 그들이 하는 사역은 하나님을 위해 적합한 길을 예비하거나 땅에서 하나님이 행한 경영 사역의 한 부분을 이어 갈 뿐이다. 그들은 경영 안에서 더 큰 사역을 할 수가 없고, 더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없으며, 더욱이 아무도 하나님의 옛 시대 사역을 끝낼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역은 피조물이 자신의 기능을 다하는 것을 의미할 뿐, 하나님 자신이 직분을 다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사역과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대를 여는 사역은 사람이 대신할 수 있는 사역이 아니다. 이 사역은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할 수 없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며, 성령의 감동이나 깨우침을 받아서 하는 사역이다. 그들의 사역은 일상생활에서 사람이 실행해야 하는 길과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하는 길을 이끌어 주는 것이다. 사람의 사역은 하나님의 경영과 관련이 없고 영의 사역을 대변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위트니스 리와 워치만 니가 한 사역은 모두 길을 인도하는 것이었다. 새 길이든 옛 길이든 성경을 벗어나지 않는 이런 원칙을 기반으로 행한 사역이다. 지방 교회를 회복시켰든 세웠든, 어쨌든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들은 은혜시대에 예수와 다른 제자들이 다하지 못했거나 심화시키지 못한 사역들을 이어서 행한 것이었다. 그들의 사역에서 머리에 수건을 쓰고, 세례를 받고, 떡을 떼거나 포도주를 마시는 것 등은 모두 예수가 사역할 당시 사람에게 요구했던 것을 회복하여 행한 것이었다. 그들의 사역은 모두 성경을 지키고 성경에서 길을 찾는 것이며, 새로운 진전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역을 보면, 성경에서 새 길을 발견하고 더 훌륭하고 현실적인 실행 방법을 찾아내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그 당시의 뜻을 찾아볼 수 없고, 말세에 하나님이 하려는 새로운 사역은 더더욱 찾아볼 수 없다. 이는 그들이 계속 옛 길을 가며 새로워지지 않고 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전히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사실과 ‘사람으로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라는’ 실행을 고수하고,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말과 “남자는 여자의 머리이며, 여자는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라는 말을 지키며, 더욱이 “자매는 설교할 수 없고 순종하는 사람만 될 수 있다”라는 전통 관념을 고집하였다. 그들의 그런 방식대로 계속 이끌어 간다면 성령은 영원히 새 사역을 할 수 없고 사람을 규례에서 해방시킬 수 없으며 사람을 자유롭고 아름다운 경지로 인도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시대를 바꾸는 이 단계 사역은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행하고 친히 말씀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 지금은 이 흐름 밖에 있는 성령의 사역이 모두 정지되었고, 성령께 쓰임 받았던 사람들도 속수무책이 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이 하는 사역은 하나님이 하는 사역과 다르고, 그들의 신분이나 대표하는 대상도 다르다. 이는 성령이 하려는 사역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로써, 각각의 사역에 따라 그 사역을 행하는 사람의 신분과 지위도 달라진다.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도 몇 가지 새로운 사역을 할 수 있고 몇 가지 옛 시대의 사역을 폐할 수는 있지만, 그들이 하는 사역으로 하나님이 새 시대에 나타내려는 성품과 뜻을 나타낼 수는 없다. 그저 옛 시대의 사역을 버리기 위해 사역을 하는 것일 뿐, 직접적으로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대변하는 새 사역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낡은 방식을 얼마나 버리든, 또는 새로운 방식을 얼마나 가져오든, 그들은 사람을 대표하고 피조물을 대표할 뿐이다. 반면 하나님이 직접 사역할 때는 공개적으로 옛 시대의 방식을 폐한다고 선포하지 않고 시대를 연다고 직접 선포하지도 않는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곧장 자신이 하려는 사역을 행한다. 즉, 곧바로 자신이 가져온 사역을 선포하고, 자신이 본래 하려는 사역을 행하며, 자신의 속성(원문: 所是)과 성품을 나타낸다. 사람이 보기에는 그의 성품이 과거 시대와 다르고 그의 사역도 과거의 시대와 다르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그저 사역을 이어 가고 더 심화시키는 것일 뿐이다. 하나님이 사역할 때는 말씀을 선포하고 직접적으로 새로운 사역을 가져오지만, 사람이 사역할 때는 곰곰이 헤아리거나 연구한 뒤에, 다른 사람이 도출한 결실을 기반으로* 인식을 심화하고 체계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 하는 사역의 본질은 ‘정해진 대로 착실히 따르고’, ‘새 신을 신고 옛 길을 가는’ 것이다. 즉,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이 가는 길이라도 하나님이 친히 개척한 길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이고,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다.


 『 요한은 아브라함에게서 태어난 이삭처럼 약속으로 태어났다. 그는 예수를 위해 길을 닦았고 많은 사역도 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이 아니라 선지자이다. 그는 예수를 위해 길을 닦는 일만 했기 때문이다. 그도 매우 큰 일을 했다. 그가 앞에서 길을 잘 닦아 놓은 후에 예수가 정식으로 사역을 시작했다. 그러나 요한은 예수를 위해 봉사한 것에 해당하며, 그가 한 사역은 예수의 사역에 이바지한 것이다. 예수는 요한이 길을 닦아 놓은 후에 사역을 시작했으며 더 새롭고 세밀하고 구체적인 사역을 했다. 요한은 시작 사역만 했을 뿐, 많은 새 사역은 모두 예수가 했다. 요한도 새로운 사역을 했지만 새 시대를 여는 자는 아니었다. 요한은 약속으로 태어난 자이고 그의 이름 역시 사자가 지어 준 것이다. 당시에 누군가 그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를 따라 사가랴라고 하자고 했을 때, 그의 어머니는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라고 하였다. 그것도 성령이 지시한 것이다. 그러면 요한은 왜 하나님이라 불리지 않았겠느냐? 예수의 이름도 성령이 지시한 것이다. 예수는 성령으로 태어났고 성령이 약속한 자이다. 그는 하나님이고, 그리스도이며, 인자이다. 요한도 매우 큰 사역을 했는데 어째서 하나님이라고 불리지 않았겠느냐? 예수의 사역과 요한의 사역이 어떤 차이가 있겠느냐? 단순히 요한은 예수를 위해 길을 닦는 자였기 때문이겠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그렇게 정해 놓았기 때문이겠느냐? 요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라고 외치며 천국의 복음을 전했지만, 그의 사역은 시작일 뿐 깊이 들어가지는 못했다. 반면 예수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 낡은 시대를 끝냈으며 구약 율법도 완전케 했다. 그는 요한보다 더 큰 사역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를 구속하는 사역을 했다. 요한은 길만 잘 닦아 놓았을 뿐이다. 비록 그도 큰 사역을 하고 많은 말을 했으며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의 사역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작을 가져다주는 데 그쳤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생명과 길 또는 더 깊은 진리를 얻지 못했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도 못했다. 요한은 큰 선지자(엘리야)다. 그는 예수의 사역을 위해 장소를 준비하고 적합한 사람들을 예비하였으며, 은혜시대의 길을 여는 선봉장이었다. 정상인의 겉모습만 보고는 이런 차이를 구별할 수 없다. 더구나 요한도 매우 큰 사역을 했을 뿐만 아니라 성령이 약속한 자이고, 성령이 그의 사역을 수호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한 사역을 통해 각자의 신분을 구별하는 수밖에 없다. 사람의 겉모습으로는 본질을 구별할 수 없고, 사람 또한 무엇이 성령의 증거인지 정확히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한과 예수의 사역이 다르고 사역의 성질 또한 다르기 때문에 이런 것을 통해 그가 하나님인지 아닌지 판단해야 한다. 예수는 시작, 후속, 종결, 성취의 이 몇 단계 사역을 했지만 요한은 시작하는 사역만 했다. 예수는 처음에 회개의 길을 말씀하면서 복음을 전했고, 그 후에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냈으며, 마지막에는 인류를 죄에서 구속함으로써 그의 전체 시대 사역을 완성했다. 예수도 곳곳에서 사람들에게 전도하며 천국의 복음을 전했다. 이 점은 요한과 같다. 다른 점은 예수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 사람들에게 은혜시대를 가져다주었다는 것이다. 예수는 은혜시대에 사람들이 실행해야 하는 것과 가야 하는 길을 말씀해 주었고, 마지막에는 구속 사역을 완성했다. 요한은 이런 사역을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예수는 하나님의 사역을 한 것이며, 그가 바로 하나님 자신이고,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대표한 것이다. 사람들은 약속으로 태어나고, 영으로부터 태어나고, 성령의 수호를 받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이런 설에 따르면 요한도 하나님이고, 모세, 아브라함, 다윗 등등도 모두 하나님이 된다. 이것은 몹시 우스운 이야기가 아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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