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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원칙 본문

찬양/생명 체험

기도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원칙

마리Mari 2019. 6. 6. 08:36

 기도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원칙



  1.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께 순복하고 경배할 수 있기 위한 것이다. 진실하게 기도하려면 반드시 성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경배해야 한다.


  2. 기도할 때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으면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며, 성령의 역사를 누릴 때는 반드시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해야 한다.


  3. 항상 자신이 얻은 깨우침과 인식, 성과와 누림에 따라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이 우러나와야 하는데, 이것이 진실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다.


  4. 시련과 하나님을 섬기는 책임이 임할 때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로 하나님께 경배해야 하는데, 이것은 피조물의 직책과 권한이다.



 기도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원칙 기도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원칙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기도의 의의는 아주 깊다! 사람이 자주 기도할 뿐만 아니라 기도할 줄 알고 항상 순복하는 기도와 이지적인 기도가 있으면 네 안이 언제나 매우 정상적이다. 만약 네가 기도할 때 늘 입술로 구호만 부르고 아무런 부담도 없고, 기도할 때 어떻게 말해야 이지가 있는 것인지, 어떻게 말하면 이지가 없는 것인지, 어떻게 말하는 것이 진실한 경배가 아닌지를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이런 일을 전혀 참답게 대하지 않는다면, 너는 기도에 성공할 때가 없다. 그뿐만 아니라 네 ①정형이 언제나 비정상이고, 어떤 것이 정상 이지이고 진실한 순복이고 진실한 경배인지, 마땅히 어떤 각도에 서야 하는지, 이런 방면의 공과와 진입은 영원히 깊어질 수 없다. 이것은 다 세밀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어쨌든 나와 접하는 것이 적기 때문에 그저 영 앞에 와서 기도할 수밖에 없다. 너의 모든 기도는 그 말에 이지가 있는지, 진실한 경배가 있는지, 네가 구하는 것이 하나님이 인정하는 것인지, 그 속에 또 거래가 없는지, 사람의 뒤섞임이 없는지, 네가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행하고 그렇게 정하는 것이 진리에 부합되는지, 하나님을 특별히 경외하고 특별히 존중하고 하나님께 특별히 순복하는 것인지, 참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는 것인지에 관련된다. 사람은 영 앞에서 기도할 때 진실하게 해야 하고 참답게 대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네가 그리스도 앞에 오는 것이 정상적일 수 있다. 네가 영 앞에서 참답게 하지 않는다면 사람(그리스도) 앞에 올 때 언제나 ②저촉이 생기거나 말할 때 이지가 없거나 ③성실하게 말하지 못하거나 하는 말과 일이 늘 방해가 되며, 일이 지난 후에도 늘 가책을 받게 된다. 왜 늘 가책을 받게 되는가? 그것은 네가 평상시에 어떻게 하나님께 경배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대해야 하는지의 진리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이 닥치면 멍해져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 모르고, 언제나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것이다.』


<좌담 기록ㆍ기도의 의의와 실행>에서 발췌


『기도하는 이 일을 참답게 대해야 한다. 네가 이불 속에 누워 기도해도 하나님이 들을 수 있다고 여기는데, 그러면 경건하지 못하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사람들이 기도한 것을 보면, 어떤 일을 정한 것은 얘기하여 한 것이 아니라 모두 기도를 통해 나중에는 성령이 결정한 것이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것은 기도로 말미암은 것이고,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여 하나님께 사함받은 것도 기도로 말미암은 것이다. 기도는 의식이 아니라 거기에는 많은 의의가 있다. 사람의 기도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느냐? 사람이 직접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네가 만약 이 일을 의식으로 간주한다면 틀림없이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 마음을 기울여 기도하지 않고 진실하게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 편에서 너는 열외로 취급받는데, 하나님께는 너 같은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너에게 어찌 성령 역사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사람이 사역을 하다가 좌절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후에는 기도하지 않으면 사역도 하지 못한다. 기도로 사역을 가져오고 기도로 섬김을 가져오는 것이다. ……


……기도할 때에는 얼마나 멋진 말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마음속의 말을 하고 솔직한 말을 하며 자신의 어려움에 근거해 사실대로 말하고 피조물의 각도에 서서, 순복하는 각도에 서서 말하면 된다. “하나님, 당신께서는 사람의 마음이 너무 강퍅한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 이 일에서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 제가 연약하고 너무 형편없어 당신의 쓰임에 합당치 않음을 당신께서 아십니다. 저에게 패역이 있어 사역을 하기만 하면 당신의 사역을 방해하게 되는데, 모두 당신의 뜻에 맞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자신의 사역을 하시기 원합니다. 우리는 다만 협력할 뿐입니다……” 이런 말도 해내지 못하면 너 같은 사람은 끝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기도할 때에도 이지적으로 기도했는지 분별해야 하니, 그러면 기도도 할 수 없겠네.’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것은 한동안 훈련하면 되기에 괜찮다. 기도를 하다 보면 어떤 말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도할 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직접적인 것이다.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기도할 때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평소에 네가 일을 할 때 곧바로 무릎 꿇고 기도할 수 있느냐? 그렇게 할 수 없다. 사람이 무릎 꿇고 기도할 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가까운 때이다.』


<좌담 기록ㆍ기도의 의의와 실행>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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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모두 일이 있을 때, 어려움이 있을 때면 기도를 한다. 정형이 좋았을 때나 예배를 한 번 아주 성공적으로 드렸다고 느꼈을 때, 너희는 기도를 했느냐?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았겠지?! 성공적인 예배를 해도 마땅히 기도를 드려야 하고 찬양의 기도도 드려야 한다. 만약 누가 너를 칭찬한다면, 너는 오만해지면서 자신에게 진리가 있다고 여기고, 또 옳지 않은 정형에 빠져 혼자 속으로 흐뭇해하면서 찬양의 기도가 없고, 더욱이 감사의 기도도 없게 된다. 이런 정형에 빠진 결과, 다음 예배에서는 무미건조해지고 할 말도 없게 되며, 성령의 역사도 없게 된다. 사람은 자신의 정형을 파악하지 못한다. 사역을 조금 하면 자신의 사역 성과를 누리고, 소극적인 정형이 조금 있으면 회복되는 데에 며칠이 걸릴지 단언하기 어렵다. 이런 정형이 바로 가장 위험한 것이다. 너희는 모두 일이 있으면 기도하고,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기도하며, 혹은 의심이 생겨 방황할 때 기도하고, ④패괴 성정이 유로(역주: 흘러나옴)되면 기도하는데, 모두 필요할 때에야 기도한다. 너는 사역에 어떤 성과가 있을 때에도 기도해야 한다…… 사람이 기도하면 성령도 따라 역사하며 너에게 어떤 느낌을 주어 너로 하여금 바르지 않은 정형에서 나오게 한다. 기도는 구하면 끝나거나 배고프면 하나님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배고프지 않으면 기도하지 않아도 된단 말이냐? 배부를 때에도 기도해야 한다.』


<좌담 기록ㆍ기도의 의의와 실행>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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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누릴 때 영이 감동을 받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껴지고, 내면의 힘이 또한 아주 커서 버리지 못할 것이 없다고 느껴진다. 너에게 이 느낌이 있으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것이고, 너의 마음이 완전히 하나님께로 향한 것이다. 너는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다. “하나님, 우리는 참으로 당신께서 예정하시고 선택하신 자들입니다. 저는 당신의 영광으로 인하여 긍지를 느끼며 당신의 자민이 되어 영광스럽습니다. 당신의 뜻이 통행되도록 저는 완전히 당신을 위해 ⑤화비하고 바치기를 원하고, 저의 일생과 필생의 정력을 모두 당신께 바치기를 원합니다.” 네가 이렇게 기도할 때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진실한 순복이 있게 된다. 너에게 이러한 경력(역주: 체험)이 있었는가? 사람이 늘 하나님 영의 감동을 받게 되면 특별히 삼가 드리는 기도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 저는 당신이 영광받으시는 날을 보기 원하고, 당신을 위해 살기 원합니다. 당신을 위해 사는 것은 가장 가치 있고 가장 의의 있는 일입니다. 저는 사탄을 위해, 육체를 위해 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오늘 당신을 위해 살 수 있는 것은 당신께서 높여주신 것입니다.” 네가 이런 기도를 하고 나면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껴지고, 하나님을 얻지 못하면 안 된다고 느껴지며,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을 얻지 못하면 죽어도 달갑지 않다고 느껴진다. 이런 기도를 한 번 하고 나면 안에는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는 힘이 생기는데, 너는 그것이 어디에서 온 힘인지도 모르며, 안에는 무궁무진한 힘이 생겨 더욱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느끼게 되고 하나님은 사랑할 만한 하나님임을 느끼게 된다. 그때는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것이다. 무릇 이러한 경력이 있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이다. 늘 하나님의 감동을 받는 사람은 생명이 변화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완전히 얻으려는 심지(心志)를 세울 수 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비교적 강하고 마음이 완전히 하나님께로 향하여 가정, 세상, 얽매임, 앞날을 모두 깨끗이 잊어버리며, 일생의 정력을 모두 하나님께 바치기 원한다. 무릇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은 모두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온전케 될 희망이 있는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르라>에서 발췌


『간혹가다 어느 날 하나님이 아주 사랑스럽게 느껴져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께 기도하게 된다. “하나님, 당신의 사랑은 너무나 아름답고 당신의 형상은 너무나 위대하십니다. 저는 당신을 더욱 깊이 사랑하기 원하고, 자신을 완전히 바치고 저의 일생을 바치기 원합니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저는 모든 것을 다 당신께 바치기 원합니다. 저로 당신을 사랑하게 하신다면……” 이것은 성령이 너에게 누리도록 준 느낌인데, 깨우침이 아니고 빛 비춤도 아니라 감동이다. 이와 같은 경력은 늘 생긴다. 출근하는 길에서도 기도하여 가까이할 수 있고, 눈물이 앞을 가리기까지 자신을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되어 적합한 어떤 장소를 찾아 자기 마음속의 격정을 다 표현하고 싶어지게 된다…… 어떤 때는 공공장소에서 자신이 누린 사랑이 너무나 많다고 느껴지고, 자신의 출신이 매우 비범하다고 느껴지며, 더욱이 자신이 누구보다 더 가치 있다고 느껴진다. 하나님의 높여 주심을 깊이 알고 하나님의 큰 사랑임을 깊이 알며,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이 측량하기 어려운 사랑이 있음을 느끼며, 알 것 같으면서도 표현할 수 없고 언제나 의미심장하여 전부 다 표현하지 못한다. 그때에는 심지어 자신이 어떤 장소에 있는지도 잊을 것이고, 심지어 “하나님, 당신은 너무나 이해하기 어렵고 또한 너무나 사람으로 사랑하게 하십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행 (1)>에서 발췌


『만약 어느 날엔가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다면 “아, 알고 보니 제가 이렇게 깊이 패괴되었네요. 저는 이제야 알게 되었어요. 다행히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네요. 지금에야 저는 광명한 인생을 보게 되었고, 인생의 바른길에 들어서게 되었어요. 저는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사람은 마치 꿈속에서 막 깨어난 듯, 문득 모든 것을 깨닫게 된다. 이것은 크나큰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냐? 그래도 하나님을 찬미하지 말아야 한단 말이냐?』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에는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에서 발췌


『나는 베드로에게 얼마나 많은 시련을 주었는지 모른다. 물론 베드로 또한 시련 속에서 많은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 수백 번의 시련 속에서 믿음을 잃어버려 나에 대해 실망한 적은 없었다. 설령 내가 그를 이미 버렸다고 말했을지라도 그는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여전히 이전의 실행 원칙에 따라 실제적으로 나를 사랑하였다. 내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해도 내가 칭찬하지 않고 마지막에 너를 사탄의 손에 내버리겠다고 알려 주었지만, 육신에 실제로 임하지는 않는 말씀의 시련 속에서 베드로는 여전히 나에게 ‘하나님, 천지 만물 가운데 어떤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이 전능자의 손에 있지 않겠나이까? 당신이 저에게 긍휼을 베푸실 때, 저의 마음은 당신의 긍휼로 매우 기쁘나이다. 당신이 저를 심판하실 때, 저는 비록 자격이 없지만 당신의 행사가 얼마나 심오한지 더욱 느끼나이다. 이는 당신께 권병(역주: 권세)과 지혜가 가득하기 때문이나이다. 저는 비록 육체가 고통받지만 영은 위로를 받나이다. 제가 어찌 당신의 지혜와 행사를 찬미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설령 제가 당신을 알고 난 후에 죽게 된다 해도 어찌 기꺼이 원하지 않겠나이까? 전능자시여! 당신은 정말 저에게 보이기 싫어하시나이까? 제가 정말 당신의 심판을 받을 자격이 없나이까? 혹시 저에게 당신이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는 것은 아니나이까?’라고 기도하였다. 베드로는 그런 시련 속에서 비록 나의 뜻을 정확하게 더듬을 수는 없었지만, 나에게 쓰임받는 것으로(나에게 심판받아 사람에게 나의 위엄과 진노를 보게 할지라도) 스스로 자부심과 긍지를 느꼈고 시련으로 낙담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을 마땅히 너희의 일처리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6편 말씀>에서 발췌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위해 한 모든 것이 다 심히 좋은데, 어찌 이 기회에 찬미하지 않겠는가? 만약 어느 경지까지 이른다면 혹시 어느 날에 가서 너는 정말 베드로처럼 시련 속에서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기도를 할 수 있는가? 만일 베드로처럼 사탄의 손아귀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사탄의 속박에서 해방받고 육체를 이기고 사탄을 이겼다.’는 말의 진실한 함의이다. 이것은 더욱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닌가?』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제32편 말씀의 ⑥게시>에서 발췌


『베드로는 형벌 가운데서 이렇게 기도할 수 있었다. “하나님, 저의 육체가 패역하오니 저를 형벌하시고, 저를 심판하여 주시옵소서. 저는 당신의 형벌과 심판을 기쁨으로 여기나이다. 설령 당신께서 저를 버리신다고 해도 저는 당신의 심판 속에서 당신의 거룩하고 공의로운 성품을 볼 수 있나이다. 당신이 저를 심판하실지라도 다른 사람이 당신의 심판에서 당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볼 수 있다면, 저는 만족하나이다. 오직 당신의 성품을 발표하시어 모든 피조물이 다 당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볼 수 있고, 또한 저도 당신의 심판을 통해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순결해질 수 있어 의인의 형상에 이를 수만 있다면, 당신의 이런 심판은 아름답고 선한 것이니이다. 당신의 아름다운 뜻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니이다. 저는 저에게 아직도 패역이 너무 많아 여전히 당신 앞에 올 자격이 없음을 알고 있나이다. 저는 당신께서 더 많이 심판해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열악한 환경이든, 큰 환난이든, 당신께서 어떻게 하시든지 저에게는 다 귀한 것이니이다. 당신의 사랑은 너무나도 깊나이다. 저는 아무런 불평 없이 당신의 지배에 맡기기를 원하나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베드로의 경력―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진실로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속에서, 시련 속에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찬미를 발할 수 있고, 완전히 하나님께 순복하고 자신을 배반하며, 그에 따라 진실하고 단일하고 순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며, 또한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이고 하나님이 성취하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 역사의 절차에 관하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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