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구원받은 간증 (중) : 너와 하나님의 관계는 어떠한가
하나님을 믿는 길에 들어서다 (중)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룽광
『내가 시온으로 돌아간 후에도 땅에는 찬미가 그치지 않고, 충성된 효력자들은 여전히 나를 위해 효력하고자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기능이 이미 끝나 내가 땅에 있었던 때를 그리워하기만 할 뿐이다. 그때 나는 화를 입어야 할 자들에게 재난을 내리기 시작하지만 사람마다 내가 공의로운 하나님임을 믿는다. 나는 절대로 충성된 효력자들을 징벌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은혜만 받게 할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제120편 말씀>에서 발췌)
저는 속으로 ‘장자의 명분은 더 이상 바라지 않고 큰 복도 원치 않겠어. 지금 난 충성스러운 효력자가 될 수 있게 노력할 거야. 이것이 내가 유일하게 추구할 수 있는 길이야. 지금부터 하나님 집에서 내게 뭘 하라고 시켜도 난 모두 충성을 다할 거야. 절대 충성스러운 효력자가 되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돼.’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충성스러운 효력자마저 될 수 없다면 단순한 효력자밖에 안 되는데, 그런 자들은 효력이 끝나고 나면 다시 무저갱이나 유황불못에 돌아가야 합니다. ‘그럼 내가 뭘 바라겠어? 아예 안 믿고 말지!’ 저는 아무에게도 감히 이런 생각을 말하지 못하였지만 하나님 눈의 감찰을 벗어나지는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날 선 검과 같은 말씀으로 저의 마음을 찔렀고, 저의 영혼을 쪼갰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나 외에 아무도 확실히 알지 못한다. 사람은 모두 자신이 나를 위해 ‘충성’을 다하고 있다고 여기는데, 그 ‘충성’ 속에 불순물이 섞여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 불순물이 사람을 망친다. 왜냐하면 그 불순물은 바로 일찍이 나에게 폭로된 큰 붉은 용의 음모이기 때문이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인데, 이렇게 간단한 일을 모를 리 있겠느냐? 나는 너의 피와 살을 지나 너의 속셈을 들여다볼 수 있다. 사람의 본성이 내게는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은 오히려 스스로 똑똑한 척하면서 자신 외에는 아무도 자신의 속셈을 알지 못한다고 여긴다. 천지 만물 가운데 전능한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현재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조그마한 희망을 품고 있는데, 희망이 실망으로 변할 때면 더 이상 못하겠다며 나가겠다고 할 것이다. 나는 한 사람도 억지로 붙잡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너는 네게 있게 될 결과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이것은 내가 너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사실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제118편 말씀>에서 발췌)
이런 말씀을 보고 저는 심장이 두근거렸는데, 하나님은 참으로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고, 사람이 사적으로 조그마한 소망을 감추고 있어도 하나님은 싫어하시고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조금 생기게 되었고, 하나님과 더 이상 거래를 하지 않고 착실한 효력자가 되어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움직이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나중에야 저는 그 3개월 간 겪었던 것이 효력자의 시련이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신 첫 번째 말씀 시련 사역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효력자의 시련을 겪고 저는 하나님이 긍휼과 자애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공의와 위엄, 사람이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권세가 있고 위력이 있어 사람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게 합니다. 또한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당연한 일이고, 이유가 없고 조건이 없으며, 더욱이 야심이 있어서는 안 되고 사치스러운 욕망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런 믿음은 하나님을 이용하고 기만하는 것으로서 양심과 이성이 없는 ④표현입니다. 설령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고, 마지막에는 징벌을 받는다고 해도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을 믿어야만 합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기 때문에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순종해야만 합니다. 또한 자신은 원래 큰 붉은 용의 자손이고 사탄의 후예로서 멸망의 부류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주재자이시기에 하나님께서 저를 어떻게 대하시든 마땅한 것이고 모두 공의로운 것입니다. 저는 마땅히 하나님의 배치와 안배에 무조건 순종해야 하고, 이치를 따지지 말아야 하며, 더욱이 대적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이 그때 시련 속에서 드러낸 추태를 돌이켜 보면, 정말 부끄럽고 창피했습니다. 저는 자신이 전형적인 사탄의 후예로서 교만하고 이성이 없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교만하고 이성이 없으며, 그저 높은 지위와 큰 복을 얻기만 원했던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처하려고 했고, 하나님과 함께 왕권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자신이 어떤 물건짝인지도 모르고 자격이 되는지도 모르면서 파렴치하고 탐욕스럽게 다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기대했던 복을 얻지 못할뿐더러 화까지 입어야 한다니 하나님을 배반하고 믿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런 적나라한 표현들에서, 저는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복을 얻기 위한 것이고, 적나라하게 하나님과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이었음을 분명히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교만이 극치에 달했고, 사람이 마땅히 가져야 할 이성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지혜로운 역사, 곧 효력자의 시련으로 저를 정복하지 않고 복을 얻으려는 저의 야심을 깨지 않으셨더라면, 저의 양심과 이성은 절대 회복되지 못했을 것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에게서 온 진리, 길, 생명을 온순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영원히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효력자의 시련을 겪고 난 뒤, 저는 더 이상 복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거래하는 마음으로 일하지 않게 되었고, 그렇게 하나님을 이용하고 기만하는 것은 너무 비열하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그때의 시련을 통해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고심을 얄팍하게나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는 사람을 증오하는 요소가 없다는 것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창세부터 지금까지 변한 적이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앞으로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하면서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원했습니다. 하지만 복받고자 하는 속셈과 거래하는 마음가짐이 사람의 내면에 깊이 뿌리박혀 있기에, 한 번의 시련으로 철저하게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시간이 길어지자 그런 것들이 또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더욱 깊고 더욱 철저하게 우리를 정복하고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연속적으로 몇 번의 시련 사역, 곧 형벌시대의 시련, 죽음의 시련 및 7년 시련을 하셨습니다. 그 몇 번의 시련 속에서 제가 가장 고생하고 가장 이득을 많이 얻은 것은 1999년의 7년 시련입니다.
1999년, 저는 새 구역에 배치되어 교회를 인솔하게 되었습니다. 그해는 하나님 나라 복음이 대거 확장될 때라 하나님 집에서는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최대한 구원해 올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그렇게 준비하는 것을 보고, 저는 2000년도가 되면 하나님의 사역이 끝나는 줄로 알았습니다. 더욱 많은 사람을 얻어 자신에게 좋은 처소가 있게 하기 위해, 저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복음 사역으로 바빴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 생활에 대해서는 간혹 안부를 물을 정도로 형식만 지켰습니다. 비록 저는 자신의 속셈이 옳지 않다는 것을 의식하였지만 복받겠다는 욕망을 도저히 제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어찌나 바빴던지 복음 사역 이외에는 그 무엇을 해도 시간을 지체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조차 시간을 지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쉬지 않고 바삐 움직였고, 어느새 연말이 되자 하나님 집에서 그 지역의 사람을 선출하여 사역에 협력하게 하였기 때문에 저는 바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역이 끝나게 되면 꼭 큰 재난이 있을 거라 상상했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온 뒤, 저는 매일 집에서 재난이 임하기를 기다렸고 하나님의 사역이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설을 코앞에 두게 되었는데, 저는 난관에 부딪쳤습니다. 이전에 가족과 친척이 저의 혼사 문제를 추궁하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는 2000년도면 결혼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의 사역이 2000년이면 틀림없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었고, 결혼 문제에 있어 제가 버틸 수 있는 한계는 2000년까지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빨리 2000년이 올 줄 몰랐고, 설에는 친척들이 다 올 텐데 난 대체 어떻게 그들에게 대처해야 한단 말인가 하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을 때에, 하나님 집에서는 아직도 7년의 시련을 더 겪어야 한다고 교통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자 저는 마음속이 요동치며 복잡해졌습니다. 저는 참지 못하고 하나님께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집에는 제가 있을 곳도 없고, 가족들도 제가 이렇게 장기간 집에서 머물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날은 하루뿐이라도 고역인데, 지금 또 7년 시련이 왔으니 저보고 어떻게 살라는 것입니까? 하나님, 제발 저를 멸해 주십시오. 저는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이런 고생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다음날에도 저는 마음속의 우울을 여전히 해소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아직도 7년이란 시간이 있잖아. 앞날이 멀었으니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야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차에 오르자마자 성령이 제 안에서 질책하고 계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처음엔 달갑게 추구하고, 심혈과 대가를 다 지불했었지. 하나님을 끝까지 사랑하겠다고 말하고, 영원히 떨어지지 않겠다고 했어. 어려움은 함께 나누고, 낙은 같이 누린다고 했었지. 넌 자신을 기만하고 있어!” 성령의 질책 앞에서 저는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숙이게 되었습니다. 전에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때에는 하나님께 맹세를 했었는데, 고생을 하게 되자 저는 약속을 저버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한 맹세는 거짓말이 되어 버린 것이잖습니까? 하나님은 제게 그렇게 많은 사랑을 주셨는데, 제가 조금만 뜻에 맞지 않는 환경이 임해도 그렇게 크게 원망하며 심지어 하나님을 배반할 생각까지 하다니, 저는 정말 양심이 눈곱만큼도 없는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저는 더 이상 나들이할 기분이 나지 않아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비록 저는 어쩔 수 없이 ‘순종’하였지만, 저에 대한 가족의 불만과 주변 사람들의 이상히 여기는 눈빛을 마주할 때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너무 괴롭고 너무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아직도 7년이나 남았다고 생각하면서 저는 자신을 느슨하게 대하였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느긋하게 처리하였고, 본분을 해도 하루하루 때우는 식이었습니다. 그런 소극적이고 대적하는 상태로 저는 점점 성령 역사를 잃게 되었습니다. 저도 자신의 상태를 돌이키려고 생각하였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에 이 같은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 나올 때 정말 열의가 넘치고, 막 본분을 하기 시작했을 때는 온몸에 힘이 넘치는 것 같았는데, 왜 한참 가다 보니 힘이 없어졌느냐? 당시의 그 사람을 지금과 대조해 보면 마치 두 사람인 듯하다. 왜 달라졌느냐? 이것은 어찌 된 영문일까?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정상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여 치우쳤고, 잘못된 길을 선택했으며, 이전의 추구에 어떤 것이 숨겨져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어떤 것들이 숨겨져 있었느냐?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마음에 소망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날이 빨리 도래하여 이런 고난이 다 끝나고, 하나님의 형상이 바뀌어 사람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소망하는 것이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령 역사를 잃은 사람은 가장 위험하다>에서 발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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