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송

[ 베드로 생애 ] 베드로의 체험——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상)

마리Mari 2019. 4. 17. 08:01

베드로의 체험——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상)


 

 

 

   『베드로는 형벌 속에서 이렇게 기도할 수 있었다. “하나님, 저의 육체가 패역하오니 저를 형벌하시고, 저를 심판하여 주시옵소서. 저는 당신의 형벌과 심판을 기쁨으로 여기나이다. 설령 당신께서 저를 버리신다고 해도 저는 당신의 심판 속에서 당신의 거룩하고 공의로운 성품을 볼 수 있나이다. 당신이 저를 심판하실지라도 다른 사람이 당신의 심판에서 당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볼 수 있다면, 저는 만족하나이다. 오직 당신의 성품을 발표하시어 모든 피조물이 당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볼 수 있고, 또한 저도 당신의 심판을 통해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순결해질 수 있어 의인의 형상에 이를 수만 있다면, 당신의 이런 심판은 아름답고 선한 것이니이다. 당신의 아름다운 뜻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니이다. 저는 저에게 아직도 패역이 너무 많아 여전히 당신 앞에 올 자격이 없음을 알고 있나이다. 저는 당신께서 더 많이 심판해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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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악한 환경이든, 큰 환난이든, 당신께서 어떻게 하시든지 저에게는 다 귀한 것이니이다. 당신의 사랑은 너무나도 깊나이다. 저는 아무런 불평 없이 당신의 지배에 맡기기를 원하나이다.” 이것은 베드로가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역주: 체험)하여 얻은 인식이자, 베드로가 하나님을 사랑한 간증이기도 하다. 지금 너희는 정복된 후에 어떤 ①표현이 있느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제가 하나님께 정복된 것은 하나님이 큰 은혜를 베푸시고 크게 높여 주신 것입니다. 지금에야 저는 인생이 헛되고 의미가 없고 사는 것이 너무 재미없어 죽기보다 못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또 평생 분주하게 지내고 자식 낳아 키우면서 한 세대 한 세대 이어 가지만, 나중에는 사람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것도 발견하게 되었어요. 오늘 하나님께 정복되고 나서야 사람이 이렇게 살면 아무런 가치도 없고 정말 무의미한 일생이라는 것을 꿰뚫어 보게 되었어요.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이렇게 정복된 자가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겠느냐? 표본과 모형이 될 수 있겠느냐? 그런 사람은 심지(心志)가 없고 진보하기를 바라지 않는 소극적인 교재(敎材)에 속한다! 설령 정복된 셈 치더라도 이런 소극쟁이는 온전케 될 수가 없다. 베드로가 온전케 된 후에, 즉 삶을 마감할 즈음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 가령 저의 수명이 몇 년 더 연장될 수 있다면, 저는 당신을 더 순수하고 더 깊이 사랑하고 싶나이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힐 때에도 마음속으로 기도하였다. ‘하나님, 지금 당신의 때가 되었나이다. 저에게 예비하신 때가 되었으니 저는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 올라야 하고, 당신을 위해 이 증거를 해야 하나이다. 저의 사랑이 당신의 요구를 만족게 하기를 원하고, 저의 사랑이 더 순결해지기를 원하나이다. 제가 오늘 당신을 위해 죽을 수 있고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어 저는 마음에 위로와 평안을 느끼나이다. 이는 제가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고, 당신이 바라시는 것을 만족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니이다. 당신께 제 자신을 바치고 생명까지도 바칠 수 있어 저는 마음에 비할 바 없는 기쁨과 위안을 느끼나이다. 하나님, 당신은 참으로 사랑스러우시니이다. 가령 이후에 저를 계속 살아가게 하신다면 더욱 당신을 사랑하리이다. 오직 살아 있기만 하면 당신을 사랑하리이다. 저는 당신을 더 깊이 사랑하기를 원하나이다. 저는 불의와 죄로 인해 당신의 심판, 형벌, 시련을 받으면서 더욱더 당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보게 되었나이다. 이는 저의 복이나이다. 이는 당신을 더 깊이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니이다. 당신이 저를 사랑하시지 않는다고 해도 저는 이렇게 당신을 사랑하기를 원하나이다. 저는 당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보기를 원하나이다. 이는 저를 더욱더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니이다. 저는 지금 사는 것이 더욱 의의 있는 것이라고 늘 느껴지나이다. 이는 제가 당신의 연고로 십자가에 오르기 때문이니이다. 당신을 위해 죽는 것은 의의 있나이다. 하지만 제가 당신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나 적어 그리 만족하는 편은 아니니이다. 저는 당신이 바라시는 것을 완전히 만족게 할 수는 없고, 당신께 보답한 것이 너무나 적다는 것을 알고 있나이다. 저는 살아 있는 동안에 당신께 모든 것을 다 돌려드리지 못했나이다. 저는 너무나도 부족하나이다. 지금 돌이켜 보니, 더욱 빚졌다고 느껴지나이다. 그저 이 한순간으로써 저의 모든 과실과 당신께 보답하지 못한 모든 사랑을 메울 뿐이나이다.’ 』 

 

 

 베드로의 체험——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상)


  사람은 모두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기를 추구해야지, 현 상태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베드로의 형상을 살아내려면, 베드로의 인식과 경력을 갖춰야 한다. 더 높고 더 깊은 것을 추구해야 하고, 하나님을 더 깊고 더 순결하게 사랑할 수 있기를 추구해야 하며, 가치 있고 의의 있는 일생을 추구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인생이고, 이야말로 베드로와 같은 사람이다. 너는 자신이 적극적인 면에서 자발적으로 진입하기를 중요시해야지, 일시적인 안일에 만족하느라 소극적으로 후퇴하면서 오히려 더 깊고, 더 세밀하고, 더 실제적인 진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너는 실제적인 사랑을 갖춰야 한다. 너는 온갖 방법을 다해 아무런 근심이나 걱정도 없는 짐승과 같은 그런 타락된 삶에서 벗어나야 하고, 의의 있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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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자신을 우롱하지 말고, 자신의 일생을 장난감으로 삼아 갖고 놀지 말거라.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심지가 있는 각 사람에 대해 말하면, 얻지 못할 진리가 없고 지키지 못할 정의가 없다. 너는 일생을 어떻게 보내야 하겠느냐? 너는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야 하겠느냐? 이런 것은 모두 너의 일생에서 가장 큰 일이다. 가장 주요한 것은 너에게 이런 심지가 있어야 하고, 또 이런 의지력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패기가 없는 그런 나약한 자가 되지 말거라. 너는 의의 있는 인생과 의의 있는 진리를 경력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자신을 건성으로 대하지 말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생이 사라지는데, 너에게 하나님을 사랑할 이런 기회가 또 있을 수 있겠느냐? 사람이 죽은 후에 다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 너는 베드로와 같은 심지와 양심이 있어야 하고, 의의 있게 살아야지, 자신을 우롱해서는 안 된다!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너는 자신의 일생을 신중하게 고려하면서 대해야 한다. 어떻게 자신을 하나님께 바쳐야 할지,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더욱 의의 있게 믿을 수 있을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상, 어떻게 사랑해야 더 순결하고, 더 아름답고, 더 선하게 사랑할 수 있을지 하는 것이다. 지금 어떻게 정복될지에만 만족해서는 안 되고, 앞길을 어떻게 가야 할지도 고려해야 한다. 너는 온전케 될 심지와 용기가 있어야 하고, 늘 자신은 안 된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진리가 사람을 차별 대우 하겠느냐? 진리가 또 일부러 사람과 맞서겠느냐? 네가 진리를 추구하는데 진리가 너를 압도하겠느냐? 네가 정의를 위해 일어서는데 정의가 너를 쓰러뜨리겠느냐? 너에게 정말로 생명을 추구할 심지가 있다면, 생명이 너를 피하겠느냐? 너에게 진리가 없는 것은 진리가 너를 외면했기 때문이 아니라 네가 진리를 멀리했기 때문이다. 네가 정의를 위해 서지 못하는 것은 정의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네가 정의가 사실을 왜곡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네가 여러 해 추구했어도 생명을 얻지 못한 것은 생명이 너에 대해 양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네가 생명에 대해 양심이 없었고, 네가 생명을 몰아냈기 때문이다. 네가 빛 속에서 살면서 빛을 얻지 못한 것은 빛이 너를 밝게 비출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네가 아예 빛의 존재에 유의하지 않아 빛이 살며시 떠났기 때문이다. 네가 추구하지 않으면 너를 가치 없는 천한 놈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네게는 살아갈 용기가 없고, 흑암 세력에 반항할 정신도 없다. 너는 너무나도 나약하다! 사탄 세력의 포위 공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렇게 아주 평안하게 일생을 보내다가 영문도 모른 채 죽으려고 한다. 네가 정복되기를 추구하는 것은 네가 당연히 해야 할 바이고, 마땅히 다해야 할 의무이다. 네가 정복되는 것에만 만족한다면, 그것은 네가 빛의 존재를 몰아내는 것이다. 너는 진리를 위해 고통받아야 하고, 진리를 위해 헌신해야 하며, 진리를 위해 굴욕을 참아야 하고, 더 많고 많은 진리를 얻기 위해 더 많고 많은 고난을 참아야 한다. 이것이 네가 해야 할 바이다. 너는 가정의 화목을 누리기 위해 진리를 버리지 말고, 일시적인 누림을 위해 네 일생의 존엄과 인격을 잃지 말라. 너는 마땅히 아름답고 선한 모든 것을 추구해야 하고, 더 의의 있는 인생길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게 천박하게 살 뿐만 아니라 추구 목표도 전혀 없다면 허송세월하는 것이 아니냐? 네가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너는 마땅히 하나의 진리를 위해 모든 육체적인 누림을 포기해야 한다. 너는 약간의 누림을 위해 모든 진리를 버려서는 안 된다. 이런 사람은 인격과 존엄이 없고, 살아갈 의의도 없다! 』 

 

 

 베드로의 체험——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상)

 

  하나님이 사람을 형벌, 심판하는 것은 모두 그의 사역에 필요한 것이고, 더욱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다. 사람은 형벌, 심판이 있어야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에 이를 수 있다. 지금은 너희가 ②심복구복하지만, 좌절을 조금만 당하면 견디지 못한다. 아직도 분량이 너무 작아, 계속 이런 형벌, 심판을 더 많이 경력하여 더 깊은 인식에 도달해야 한다. 지금은 단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 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참 하나님임을 알고도 있지만, 여전히 사랑이 얼마 없고, 더욱이 순결한 사랑에는 이르지도 못하였다. 너희가 인식한 것은 너무나 얕고, 분량은 아직도 부족하다. 정말로 어떤 환경이 닥치게 되면, 여전히 간증이 없고, 적극적인 방면의 진입이 너무 적어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 전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소극적이고 피동적이어서 몰래 마음속으로만 하나님을 사랑할 뿐, 실행할 길이 없고, 목표도 명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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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전케 된 사람은 정상 인성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갖춘 진리는 양심의 격(格)을 넘어 양심의 기준보다 더 높아졌다. 그런 사람은 양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뿐만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이 사랑스러운 분이고 사람에게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분임을 보게 되었으며, 하나님에게는 사람이 사랑할 만한 면이 너무 많아 사람이 그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도 보게 되었다. 온전케 된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심지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으로, 자발적인 사랑이고, 보수를 따지지 않는 사랑이며, 거래가 없는 사랑인데, 오직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하나님 사랑하기만을 중요시한다. 그는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든 안 주든,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하나님과 조건을 따지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양심으로 가늠하는 것이 아니다. 즉, 당신이 내게 베풀어 주면 나도 당신께 사랑을 돌려드리고, 당신이 내게 베풀어 주지 않으면 나도 당신께 돌려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아니다. 온전케 된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은 조물주이시고, 그분이 우리에게 이 사역을 하셨다. 내게 그분에 의해 온전케 될 수 있는 이런 기회와 조건이 있고 자격이 있게 된 이상,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기를 추구하면서 마땅히 그분을 만족게 해드려야 한다.’라고 여긴다. 이것은 베드로가 경력한 것과 같다. 그는 가장 연약했을 때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당신은 제가 언제 어디서나 당신을 그리워하고, 언제 어디서나 당신을 사랑하기 원한다는 것을 아시나이다. 그러나 저의 분량은 너무나 작고 연약하고 힘이 없으며, 저의 사랑은 너무나 유한하고, 당신에 대한 진심은 참으로 너무나 적어 당신의 사랑과 비교하면 저는 정말 살 자격이 없나이다. 저는 오로지 이 일생을 헛되이 살지 않기를 바라고, 당신의 사랑에 보답할 뿐만 아니라 저의 모든 것을 전부 당신께 바칠 수 있기를 바라나이다. 저는 피조물로서 당신을 만족게 해드리기만 하면 마음에 평안을 얻나이다. 다른 요구는 없나이다. 비록 제가 지금 연약하고 무기력하오나 당신의 부탁을 잊을 수 없고, 당신의 사랑을 잊을 수 없나이다. 저는 지금 당신의 사랑에 보답할 뿐이나이다. 하나님, 저는 어떻게 해야 당신께 마음의 사랑을 돌려드릴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능력을 다하여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만족게 하고 저의 모든 것을 다 당신께 바칠 수 있을지 몰라 마음이 괴롭기 그지없나이다. 사람의 연약은 당신께서 다 아시나이다. 제가 어떻게 해야만 당신의 사랑에 닿을 수 있사오리이까? 하나님, 당신은 저의 분량이 작음을 아시고, 저의 사랑이 너무나 적음을 아시나이다. 이런 환경에서 제가 어떻게 해야 저의 능력을 다할 수 있사오리이까? 저는 제가 당신의 사랑에 보답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당신께 드려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나이다. 그러하나 지금 저의 분량은 정말 너무나 작나이다. 당신께서 저에게 힘과 믿음을 더해 주셔서 제가 더욱더 당신께 순결한 사랑을 바칠 수 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칠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 당신의 사랑에 보답할 뿐만 아니라 당신의 형벌, 심판, 시련을 체험하고, 더 심한 저주도 맛볼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제게 당신의 사랑을 보게 하셨사오니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나이다. 저는 지금 비록 연약하고 무기력하지만, 어찌 당신을 잊으오리이까? 당신의 사랑, 형벌과 심판으로 제가 당신을 알게 되었사오나 당신은 너무나도 위대하시어 당신의 사랑에 만족드릴 수 없음을 느끼나이다. 제가 어떻게 해야만 저의 모든 것을 조물주께 바칠 수 있사오리이까?’ 베드로에게 이런 바람은 있었지만 분량은 부족했었다. 그때 베드로는 마음이 칼로 도려내는 듯 몹시 고통스러웠고,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지만 여전히 계속 기도했다. ‘하나님, 사람의 분량이 작고 사람의 양심도 취약하여 저는 단지 당신의 사랑에 보답만 할 뿐이나이다. 지금 저는 어떻게 해야 당신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저의 능력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고, 제 모든 것을 다 당신께 바치리이다. 당신이 심판하시든, 형벌하시든, 베풀어 주시든, 거두어 가시든, 제게 조금의 불평도 없게 하셨나이다. 당신이 저를 형벌, 심판하실 때, 제 안에 늘 불평이 있어 언제나 순결에 이르지 못하고, 당신이 바라시는 것을 만족게 해드리지 못하고, 그저 마지못해 당신의 사랑에 보답하게 된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르나이다. 저는 지금 제 자신을 더욱 증오하나이다.’ 베드로는 더 순결한 사랑을 찾고 구했기에 이런 기도를 하게 된 것이다. 그는 찾고 구하며 간구도 하고 더욱이 자책도 하면서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였고, 하나님께 빚졌다고 느꼈고 자신이 증오스럽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또 근심과 소극적인 것도 조금 있었다. 그는 늘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이르지 못하고 자신의 능력을 다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런 환경에서도 베드로는 여전히 욥의 믿음을 추구하였다. 베드로는 욥이 당시에 그토록 믿음이 컸던 이유를 알고 있었는데, 욥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베풀어 준 것이기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거두어 가시는 것은 당연하고, 하나님이 주고 싶은 사람에게 주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 성품임을 보고 아무런 불평 없이 여전히 하나님을 칭송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베드로는 자신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기도했다. ‘지금 저는 양심으로 당신의 사랑에 보답해 그 사랑을 조금 돌려드리는 것에만 만족할 수 없나이다. 저의 생각이 너무나도 ③패괴되어 당신을 조물주로 여기지 못하나이다. 저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할 자격이 없사오니 저의 모든 것을 당신께 기꺼이 바치고, 아무런 선택도 없이 당신께서 하신 모든 것을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나이다. 제가 당신의 사랑을 보고, 또한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칭송하고, 제게서 당신을 찬미하는 소리가 나오게 하사 제게서 큰 영광을 얻으시옵소서. 저는 당신을 위해 이 증거를 서기 원하옵나이다. 하나님, 당신의 사랑이 그토록 보배롭고, 또 그토록 아름다운데, 제가 어찌 악한 자의 손아귀에서 살기를 원하오리이까? 저는 당신께서 지으신 것이 아니나이까? 제가 어찌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리이까? 차라리 저의 온 몸과 마음이 당신의 형벌 속에서 살지언정, 그 악한 자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싶지는 않나이다. 저의 몸과 마음을 당신의 심판과 형벌에 드리기를 원하옵나이다. 제가 정결케 될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당신께 바칠 수 있나이다. 저는 사탄을 혐오하오니 그것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싶지 않나이다. 저는 저를 심판하여 당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발표하시기를 기꺼이 원하옵고 원망하지 않겠나이다. 피조물의 본분을 할 수만 있다면 일생 동안 당신의 심판을 동반하여 당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알고, 악한 자의 권세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옵나이다.’ 그는 늘 이렇게 기도하고, 늘 이렇게 찾고 구하여 비교적 높은 경지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피조물의 본분을 하였고,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으며, 또한 양심의 기준보다 높을 수 있었다. 그의 이런 기도가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그의 심지는 갈수록 커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갈수록 커졌다. 비록 그는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여전히 하나님 사랑하기를 잊지 않았고, 여전히 찾고 구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기도에 이런 말이 있다. “저는 당신의 사랑에 보답하기만 했을 뿐, 전혀 당신을 위해 사탄 앞에서 증거하지 못했나이다. 저는 사탄의 권세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여 아직도 육체에서 살고 있나이다. 저의 사랑으로 사탄을 패배시키고 사탄을 수치스럽게 하여 당신의 마음을 만족게 하리이다. 사탄은 당신의 원수이오니 저는 저의 전부를 다 당신께 드리기 원하옵고 사탄에게는 털끝만큼도 주고 싶지 않나이다.” 그는 이 방면으로 찾고 구할수록 더욱 감동을 받았고, 이런 일들에 대한 인식이 점점 더 깊어졌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것이 그가 도달한 경지이다. 그는 사탄의 권세를 초월하였고, 육체적인 누림과 취향에서 벗어나 형벌이든 심판이든 더 깊이 체험하기를 원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당신의 형벌과 심판 속에서 살고 있어 그것이 아무리 고통스럽다고 해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사탄의 우롱 속에서 살고 싶지는 않나이다. 저는 당신의 저주 속에서 사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고, 사탄의 축복 속에서 사는 것을 고통으로 여기나이다. 당신의 심판 속에서 살면서 당신을 사랑하게 되어 저의 마음은 대단히 기쁘나이다. 당신의 형벌과 심판은 공의롭고 또한 거룩한데, 그것은 저를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고, 더욱이 저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나이다. 저는 한평생 당신의 심판 속에서 살면서 당신의 보살핌을 받을지언정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는 한시도 살고 싶지 않나이다. 저는 당신께 정결케 되기 위해 고통받더라도, 사탄에게 이용당하거나 우롱당하고 싶지 않나이다. 저는 피조물로서 당신께 쓰임받고 점유되어야 하며, 심판과 형벌도 받고 저주까지도 받아야 하나이다. 당신께서 저를 축복하려고 하실 때, 저의 마음은 그로 인해 기쁘나이다. 이는 제가 당신의 사랑을 보았기 때문이나이다. 당신은 조물주이시고 저는 피조물이오니 당신을 배반해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아서는 안 되고, 사탄에게 이용당해서는 안 되나이다. 당연히 당신을 위해 우마가 되어야지, 사탄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되나이다. 차라리 당신의 형벌 속에서 살면서 육체적인 복락이 없을지언정, 당신의 은혜를 잃었을지라도, 저는 여전히 그것을 누림으로 여기겠나이다. 비록 당신의 은혜가 저를 따르지 않지만, 저는 당신의 형벌과 심판을 누림으로 여기오리이다. 이것은 당신의 가장 좋은 축복이고, 가장 큰 은혜로소이다. 비록 당신이 저에 대해 언제나 위엄과 진노이시오나 저는 여전히 당신을 떠날 수 없고 여전히 더 사랑하리이다. 저는 차라리 당신의 집에서 살면서 당신께 저주받고, 형벌받고, 타격받더라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싶지 않고, 육체만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며 바쁘게 보내고도 싶지 않으며, 더욱이 육체를 위해 살아가기도 원치 않나이다.” 베드로의 이러한 사랑은 순결한 사랑이다. 이것은 온전케 되는 경력이고, 온전케 되는 최고의 경지인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의의 있는 인생인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귀하게 여긴 것은 그에게 있어 가장 귀한 점이다. 베드로는 말했다. “사탄이 내게 물질적인 누림을 주어도 나는 결코 그것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노라.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이 임하면 그것을 은혜로 여기고, 누림과 축복으로 여기노라.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면 나는 영원히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고, 여전히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면서 계속 그것의 통제를 받고 그것에게 장악될 것이노라. 그러면, 나는 영원히 진정한 사람이 될 수 없노라. 이는 내가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없고, 내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지 못한 까닭이노라. 설령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하시지 않아 내가 위로를 잃고 속이 불타는 듯하여 평안과 기쁨이 없고 늘 하나님의 형벌과 징계가 나를 떠나지 않는다 해도 나는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볼 수 있어 이것을 기쁨으로 여기노라. 이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고 의의 있는 일이노라. 비록 하나님의 보호와 보살핌이 무정한 형벌, 심판, 저주, 채찍으로 바뀌었으나 나는 여전히 이런 것을 누림으로 여기노라. 이는 이런 것이 나를 더욱 정결케 하고 변화되게 하며,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게 하고,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더 순결하게 사랑하게 하기 때문이며, 또 피조물의 본분을 할 수 있게 하고, 나를 하나님 앞으로 이끌 수 있으며,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사탄을 위해 ④효력하지 않게 하기 때문이노라. 언젠가 내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지 않고, 내 모든 것과 모든 힘을 조금도 남겨 놓지 않고 다 하나님께 바칠 수 있으면, 그때는 매우 흡족할 것이노라.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이 나를 구원했으니 일생 동안 살면서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떠날 수 없노라. 내가 땅에서 살고 있는 것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사는 것이노라.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이 나를 보살피거나 보호하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을 것이고, 또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낼 기회도 없고 살아낼 수도 없을 것이노라.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이 나를 떠나지 않아야만 내가 언제나 하나님의 정결케 함을 받을 수 있노라. 나는 하나님의 엄한 말씀과 공의로운 성품 그리고 하나님의 위엄 있는 심판이 있어 지극히 큰 보호를 받게 되었고 빛 속에서 살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었노라. 내가 정결케 되고 사탄에게서 벗어나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된 것은 금생의 가장 큰 복이노라.” 이것이 베드로가 경력한 최고의 경지이다.   』 

 

 

 베드로의 체험——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상)

 

 

 『 온전케 된 사람이 도달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⑤정형이다. 네가 이 정도에 이를 수 없으면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낼 수 없다. 사람이 육체에서 사는 것은 곧 인간 지옥에서 사는 것이다. 심판과 형벌이 없으면 사람은 다 사탄과 마찬가지로 더러운데 어찌 거룩해질 수 있겠는가? 베드로는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은 사람에게 가장 좋은 보호이고 가장 큰 은혜이다. 오직 하나님이 사람을 형벌하고 심판해야만 사람이 각성할 수 있고, 육체와 사탄을 증오할 수 있다. 하나님의 엄한 징계는 사람들이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고 자기의 좁은 세계를 떠나게 하여 하나님의 얼굴 빛 속에서 살게 한다. 심판과 형벌은 그야말로 가장 좋은 구원이다!’라고 여겼다. 그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나님, 당신의 형벌과 심판이 있기만 하면 당신께서 아직 저를 떠나시지 않은 줄로 알고 있나이다. 하나님이 제게 기쁨도 평안도 주시지 않고, 저를 고통 속에서 살게 하시고, 수없이 채찍질하시더라도 저를 떠나시지만 않으면 제 마음은 편안하리이다. 당신의 형벌과 심판은 오늘날 저에게 가장 좋은 보호가 되었고, 가장 큰 축복이 되었나이다. 당신이 저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저에 대한 보호이나이다. 지금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이 은혜는 당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나타내신 것이고, 형벌이자 심판이며, 더욱이 시련이고 고난스러운 삶이나이다.’ 그가 육체적인 누림을 버리고 더 깊은 사랑을 찾고 더 큰 보호를 구할 수 있었던 것은 형벌과 심판 속에서 얻은 은혜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정결케 되고, 성정이 변화되는 데에 이르고,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고, 피조물의 본분을 하려면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징계와 격타(擊打)가 떠나지 않게 해야 하고, 사탄의 지배와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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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의 체험——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상)